칠레 출신 프랑스 감독 하울 루이즈의 <어느 범죄의 족보> - 미로와 수수께끼 속의 범죄심리 계보학 (이명희 프리 컨트리뷰터)
94 AUTEUR <어느 범죄의 족보> 칠레의 망명 감독 라울 루이즈가 펼쳐보이는 초현실주의 느와르
http://drmsrv.nkino.com//KINO_PDF/1997/04//199704108_115.pdf
베를린 영화제 공식 부문에 선보인 프랑스
영화들은 특유의 지적 경향을 보였는데 극
영화에서는 특정직업들에 관한 사회인류학
적 접근으로 나타났다. 라울 루이즈 감독의
<어느 범죄의 족보>는 정신분석학자에 대
한 풍자와 관찰로 가득 차 있고, 크리스티
앙 드 샬롱쥬 감독의 <배우>는 배우 사회의
행태분석으로 그려져 있다. 영화에서 이야기 진행보다
인물들의 행태에 대한 관찰과 담화를 보고 듣는다는 것
은 관객에게 지적 노력을 요구한다. 프랑스 영화가 지겹
다고 표현되는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. 미셀 세로가 열연
한 <배우>는 사샤 기트리 작품의 리메이크로서 연극배우
들의 불안, 습성, 애환을 코믹하게 그려놓았다. <어느 범죄의 족보>
에 등장하는 정신분석학자들은 실험동물들이 보여주는 행태처럼 흥
미있다. 지나친 직업의식과 버릇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이 그들을
전형적인 행동양식의 우스운 집단으로 그려놓았기 때문이다. 한
개인이 여러 조각으로 떨어져 나가는 듯한 이야기 방식으로 구성
된, 아니면 여러 명의 인물의 공통점이 모아져 한명으로 집중된
듯한 독특한 영화 <어느 범죄의 족보>로 칠레 출신 감독 라울 루
이즈는 평생공로 은곰상을 수상하였다. 이 영화는 감독이 어떤
주제를 갖고 접근했든, 관객이 해석하고 의미를 주어야하
는 대표적인 영화의 하나이다. 물론 형사물 같은 이야
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겨도 되지만 거듭되는
몇개의 화두가 이 영화에서 이중의 의미를 찾도
록 요구하기 때문이다. 1920년경 비엔나에서 실
제로 있었던 범죄가 이야기의 시작이다. 아동정
신분석학자의 선구자였던 헤르미니 헬무트 폰
후그가 조카에게 살해당한 사건이다.
정신분석학자 잔느는 5살난 조카가 범죄자,
살인자의 성향을 갖고 있다고 파악해낸다. 프
로이드 학파는 모든 인간이 5세가 되면 성향과
사람됨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. 조카는 프로이
드 이론에 의하면 바뀌지 않을 것이다. 그녀의
과학적 관찰은 성장하는 조카에게 이 이론이 합당하게 증명되는 것
을 기다리는 데 있다. 이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조카는 그토록 기다
리던 살인을 저지르는데, 희생자는 바로 이 정신분석학자이
다. 변호사 솔랑쥬는 이 사건에서 살인자인 조카 르네를 변
호하게 된다. 희생자가 조카에게 십년 이상이나 강요해온 역
할부담이 얼마나 무책임한 게임이었나를 밝히고, 결국 살인
까지 유도한 것은 이 학자의 이론이라는 걸 확신시킨다. 조
카는 자신에게 비정상적인 관심을 쏟았던 숙모에게 보복하기
도 했지만‘살인에의 초대’에 더이상 저항할 수 없는
심리상태에 이른 것이다.
변호사가 이 사건에 적극적으로 자신을 투자하고
연구할수록 조카 르네는 변호사를 숙모와 혼동하는
경향이 생긴다. 또한 변호사는 그에게서 몇년 전에
죽은 아들 같은 착각을 느낀다. 솔랑쥬가 르네를 변호
한 것은 성공적이어서 르네는 풀려나고, 솔랑쥬와 같
이 기거하기에 이르면서 솔랑쥬는 르네를 사랑하게
된다. 범죄자 성향이 있는 르네의 악습은 다시 살아난
다. 솔랑쥬 속에 살고 있는 죽은 잔느를 다시 살해할
기회가 르네에게 생길 것 같아 보인다. 부랑아 르네를
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솔랑쥬는 결국 르네를 죽여버리
고 만다. 이렇게 범죄는 계승된다. 영화는 아시아 어딘
가의 전설을 이야기의 틀로 사용한다. 어느 남자가 여
자를 죽인다. 죽은 여자는 귀신이 되는데 이 귀신을 남
자는 사랑하게 된다. 자기가 사랑하는 귀신, 그러나 자
기가 죽인 여자에게 남자는 살해당한다는 이야기이다.
<어느 범죄의 족보>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표시를 주
지도 않고 잔느와 솔랑쥬의 이야기를 미로처럼 오고 간
다. 이것은 머리를 써서 바둑을 두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은
유적 장면으로 나타난다. 관객의 영화관람은 이 수수께끼를
풀고 사건진행을 파악하는 지적인 게임이 된다. 라울 루이즈의
연출은 현란하여 관객의 지적인 분석을 빠른 속도로 요구한다. 르네
를 변호하는 솔랑쥬는 살인의 정황과 범죄자 르네를 파악하기 위하
칠레 출신 프랑스 감독 라울 루이즈의 <어느 범죄의 족보>
미로와 수수께끼 속의 범죄심리 계보학
깐느 영화제의 단골손님으로 꼽혀온 라울 루이즈 감독이
올해는 베를린 영화제에 신작을 출품했다. 정신분석학자
들의 위험한 연구를 소재로 한 <어느 범죄의 족보>는 루
이스 부뉴엘의 후기작들을 연상시키는 분위기와 미로 속
의 초현실주의와 극단적인 현학주의를 자유롭게 섞은 매
우 난해한 영화였다. 칠레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
라울 루이즈는 관객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심오한 시네
아스트 중 하나이다.
Genealogies D’un Crime
프로이드의 후계자는 범죄의 계보학에 집착한다.
94 KINO April 1997
KINO April 1997 95
여 놀이를 제안한다. ‘너는 내가 되고, 나는
너가 된다.’그들은 역할을 바꾸어 상대방을
이해하기 위한 연극을 시작하지만 번번이 실
패한다. 상대방을 정당화하기도 하고, 상대방을 비난하는 무의식을
드러내어 신경질적인 대사를 내뱉으며 서로의 역할은 헝클어지고
나누어지고 합쳐진다. 이 대사를 따라가는 것은 관객에게 마치 거울
에 보이는 자기 아닌 자기를 타인이라 여기고, 타인과 자기를 동시
에 분석해야하는 힘든 노력과 같다. 그런데 이 서로의 역할교환은
죽은 잔느가 속했던 정신분석학자 사회가 시도했던‘혁명적인’치
료방법이었다. 이 사회가 르네에게 가했던 권력과 통
제는 범죄를 유도하고, 스
파이식 정신분석학자의 염
탐은 그를 살인자
만들기로 나아간다.
그들은 서로의 눈을
가린 채 상대방의 역할을 연기해보고 살인자의 흉내를
내봄으로써 심리를 파악하려는 실습을 하게 되는데 르네는 충실하
게 살인자의 역할을 해내고 잔느는 희생자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살
인이 저질러진다. 영화의 화두는 이 범죄적인 치료법이 혁명적인가
아닌가에 맞추어질 수 있다.
『프랑스헌법과 혁명의 정신』이란 저서로 프랑스 대혁명 이론가로
통하는 생 쥐스뜨의 문장이 영화의 프롤로그인데, ‘범죄만큼 미덕
에 가까운 것은 없다’라는 문장이다. 혁명적 치료법을 시도하는 학
자사회를 보면서 관객은 혁명이란 범죄의 위험을 무릅쓰는 것인가
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. 이 서두를 감독은 어떤 의도로
던진 것일까. 관객은 영화를 여러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다. 이야기
중심으로 영화를 관람하든가, 상징적인 주제를 이끌어내면서 영화
를 보든가인데 이런 면에서 영화자체는 복잡한 구조를 이루게 된다.
이런 자유를 구가하는 게 바로 라울 루이즈 영화의 특징이다. 루이
스 부뉴엘의 영화 <부르주아의 사려깊은 매력>과 <멸종된 천사>에서
보이는 샘플 인간들의 행태가 그대로 살아나고 있는데 초현실주의
적인 연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냐는 질문에 감독은“나는 칠레
사람이다. 칠레 사람은 초현실주의자가 아니면 미친 사람 둘 중의
하나이다”라는 유머로 대답했다. 죽은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연
기하기로 되어 있었던(대신 미셀 삐콜리가 맡았다)
이 영화를 역시 그
가 연기한 라울 루
이즈의 전작 <세번
의 죽음과 한번
의 삶>의 연속
선상에 두는 이유도 초현실주의자다운 인생관찰에서
온 듯 싶다. 프랑스 문화(앙드레 지드와 말라르메가 거론되고 그들
의 문학이론이 영화형식에 응용되는 점에서)에 대한 이해가 지나치
게 요구되고, 이야기 구성에서나 연출방식에서나 현학적이고 풍성
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영화를 좋은 영화로 보느냐 아니냐는 관객의
취향에 좌우될 것 같다. 일인이역을 맡은 까트린느 드느브의 연기도
그 어느 영화에서보다 풍성하고 돋보인다.
이 영화의 조명과 제작 디자인이 현란하고 정교한 이유에 대해서
라울 루이즈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.“ 이 영화는 세가지 색을 중심으
로 디자인되었다. 붉은 색, 푸른 색, 담배 갈색이다. 담배색은 우울
함을 만든다. 체홉다운 색깔이다. 소련 영화인들이 애호하는 색깔이
다. 조명 카메라맨인 스테판 이바노프는 불가리아 사람인데 내 아내
인 발레리아 사르미엔토와 함께 작업했던 사람이다. 그는 이 색깔의
필터 사용에 아주 익숙하다.
적색, 청색은 일찍이 테크니칼
라에 의해 개발되었는데 의상,
화장 등을 비롯한 제작 디자인
에 맞아야만 진가를 발휘한다.
이런 영화 기술자들과 시나리
오를 같이 분석한다는 것은 배
우들과 같이 작업하는 것만큼
중요하다. 모든 장면에 효과를
살리도록, 피부색, 입술, 예술
소품, 색깔 톤 등, 우리는 같이
시나리오를 연구했다.”
▶이명희(프리 컨트리뷰터)
정신분석학은 치료가 아니라 살인을 준비하는 게임이 된다.
솔랑주는 자신이 변화하여 살려낸 청년을 살해한다. 희생자는 누구일까? 범죄는 변화사에게로 복제된다.
변호사와 정신분석학자의 만남.
남극토끼 부부클리닉 공간 토탈 늘푸른소나무 문학산책 레슬매니아™ 야콘 미키앤미카 베스트너스 그린원룸
댓글을 달아 주세요